요즘은 퇴근하고 나면 청소하고 빨래하고, 공부 조금 하고 코딩하다 보면 어느새 10시가 된다. 그리고 그때서야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보는 게 하루의 작은 낙이다.

원래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도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작품은 더더욱. 케데헌도 안 봤고, 흑백요리사도 안 봤다. 말 그대로 ‘유행 따라가지 않는 사람’에 가깝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찾아보는 드라마가 생겼으니, 오피스물은 원래 좋아하는 취향이기도 하고. 미생도 좋아했고.

직장인이다 보니 공감도 잘 되고, 아직 직장생활이 길지 않다 보니 일종의 ‘간접 경험’을 쌓는 느낌도 있다. 책을 읽으며 배우듯, 드라마를 보며 “아, 저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느낌.

특히 등장인물을 보면서 “나는 회사에서 어떤 캐릭터일까?”를 떠올리게 된다. 혹은 “나는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도 해보고.

이번 드라마의 주인공인 김부장을 보면서는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들었다. 전에 다니던 회사의 대표가 떠오른 것이다. 실무는 나름 잘했지만 시대 변화에는 둔감하고, 관리직으로서는 최악이었던 사람.

전 직장 사람들과 술 마시다 보면 “그 대표, 사람은 좋았지”라는 말이 늘 나왔다. 친구나 후배로 만났다면 괜찮았을 텐데 ‘윗사람’이라서 최악인 유형.

특히 드라마에서처럼 빠르고 현명한 결단이 필요한 순간마다 책임을 회피하거나, 우유부단해서 시간을 끄는 모습이 대표와 너무 겹쳤다.

그런 대표를 욕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안쓰러웠다. 능력은 부족한데 어쩌다 그 자리에 앉아 버려 고생하는 모습. 그렇다고 대놓고 “능력 없으니 그만두세요. 다른 사람 발목 잡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 현실.

작 중 김부장의 상사가 “아직도 숙제 검사하는 것 같다”, “너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척을 하는 거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솔직히 대표에게 했어도 똑같이 들어맞는 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현명한 사람 밑에서 일하지 못한 내가 현명하지 못했던 걸 수도 있다.

그래도 꼰대 같아 보이는 상사도 사실은 어떻게든 먹고살려고, 자기 위치를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능력은 욕할지언정, 사람 자체를 욕하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있다.

드라마에 대해 2030세대가 공감하기 어렵다는 기사를 하나 봤다. 평생 일해도 서울 아파트 사기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 자가 + 대기업’ 조합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극 중 김부장을 보며 이제 역할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가장, 직장인,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여 더 마음이 쓰였다. 나도 어쩌면 이런 가부장적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직장인으로서 느껴지는 감정은 꽤 복잡했다. 특히나 예전에 모셨던 대표가 많이 떠올랐고.

사실 이 드라마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그리고 원래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환경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지를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보여주기 때문에 더 와닿는 것 같다.

직장이란 곳 자체가 결국 각자의 목적을 위해 다들 모인 곳이니, 말이 좋아서 직장이지, 사실은 서로를 조금씩 갈아 넣는 곳. 아귀지옥이라는 말도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람들의 사연, 우리가 숨겨둔 직장생활의 감정들이 투영되며 이 작품이 더 빛나는 것 같다.

이직한 지 이제 일주일하고 하루, 벌써 회사 사정이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실무자 한 명이 대형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고, 그 안에서 프로그램 구조를 바꾸고 싶어 하는 그룹장이 있고, 승진에 욕심이 없는 팀장, 그리고 어영부영 승진 욕심 없이 다니는 사람들까지.

이 회사는 대체로 승진 욕심이 없다. 연봉 인상도 테이블대로 가고, 승진은 연차가 채워지면 되는 구조. 책임만 늘어나니 매력도 없다.

게다가 회사가 스스로 혁신하는 것도 아니고, 회장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분위기라 다들 말 잘 듣는 작은 물고기 같은 느낌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목소리 크게 내고 주도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승진하는 듯하다. 물론 실력도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반도체 납품 장비 프로젝트를 둘이 나눠 맡게 되었고, 배울 것도 많고 성장할 기회도 많아 보인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룹장에게는 기술적 도전 의지를 보여주고, 팀장에게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며, 팀원들과는 겸손을 유지하는 것.

결국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계산기를 두드리며 살아가고 있다.

나이는 어리면 <미생>의 장그래처럼, 나이가 들면 <김부장 이야기="">의 김부장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참고로 8화 뒤는 안봤습니다. 김부장이 퇴사 누른 순간, 제 드라마는 끝입니다.

왜냐면 저는, 대리이지 부장이 아니거든요.

카테고리:

업데이트: